홍순은 목사(시온성교회), 심상래 원로목사(남하교회), 권오정 원로목사(대구서교회, 전 예장고신총회장), 조재태 원로목사(전 예장고신총회장)
홍순은 목사(시온성교회), 심상래 원로목사(남하교회), 권오정 원로목사(대구서교회, 전 예장고신총회장), 조재태 원로목사(전 예장고신총회장)

나이 많은 노인이 여행을 간다면 조금은 사치스럽게 들릴 것이다. 그런 여행일정을 우리는 한 달 전에 잡았다. 벽에 걸린 달력에도, 탁상용 카렌다에도, 손에 든 스마트폰에도 그 일정을 표시해 놓았다. 거실에 앉아 있어도, 집 밖에 나가 있어도, 그 날들은 쉽게 눈에 띈다. 붉은 밑줄로 표시해놓은 달력은 한 달 동안 내내 내 눈에 박혔다. 소풍 갈 날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랄까? 그렇게 기다린 날인데, 7월 중순의 장마 예보가 마음을 초조하게 했지만, 카렌다의 붉은 밑줄을 지우지는 못했다. 이른 아침 우산과 가벼운 가방을 챙겨들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에 올랐다. 한 달 전에 서둘러 예매한 것을 생각한다면, 겨우 다섯 사람이 승객의 전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제나 좌석번호 3번이 내 자리다. 전면이 환하게 보여 너무나 좋다. 오락가락하는 장마 비와 자욱하게 피어오른 안개가 시야를 가리기는 했지만, 거창까지의 짙푸른 지리산 자락의 여행길은 내게 있어서는 최고의 선물이다. 차중인데도 내 귀에는 개울 물소리가 들렸고, 내 눈에는 뛰어 다니는 다람쥐가 보였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솜씨인 여름 산야의 짙푸른 수채화는 수시로 바뀌어서 더 좋았다. 우리의 삶이 한편의 산문(散文)이라면, 여행은 아름다운 시() 한 수나 다름없다. 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감상하는 세 시간동안 지루한 줄을 전혀 몰랐다. 내가 3번 좌석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시 조금 못 미쳐 거창터미널에 도착했다. 먼저 온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잡은 손을 놓기가 싫었다. 우리의 안내는 홍순은 시온성교회 담임목사님이시다. 그가 인도한 곳은 창포원(菖蒲園)이다. 시가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거창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숨어 있었구나! 창포원은 낙동강 주민수계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하였다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130,000평에 이른다고 한다. 본격적인 조성사업은 일천하지만 연꽃이 핀 면적만도 엄청나 보였다. 입구에 사람과 자연 동식물 모두가 행복한 서식처가 되로록 꾸민 공간, 이른바 자연주의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완공되면 볼거리가 많을 것 같았다.

 

시내에서 조금 외진 곳에 있는 호텔 자바(JAVA)가 우리의 유숙처다.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대구 친구 권오정목사가 삼상동목사님 밑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때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메어지게 했다. 주일 예배를 위해 토요일에는 이발하고 목욕하고 철야기도를 하셨고, 주일 아침에는 금식하고 강단에 서셨다. 집에 있으면서도 항상 정장하고 지내셨고,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무릎 꿇고 앉으셨다. 주일예배 설교를 나이 어린 부목사와 윤번제로 동사하기를 간청하여 실행하였고, 부목사로 하여금 당회에 참석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의 대소사를 부목사와 수의하여 행하셨고, 목사님의 딸 결혼식에는 신랑보다 두 살 아래인 부목사에게 주례를 맡기셨단다. 거짓말 같은 사실 앞에 나는 산산이 부셔지고 싶었다.

둘째 날이다. 함양 상림주차장에서 서보성 목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온종일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 일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대봉산 스카이랜드. 거기서 대봉모노레일에 올랐다. 대봉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오는 거리는 3,93km, 체공 시간은 한 시간이 조금 넘는다. 함양의 명산 중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대봉산, 정상인 천왕봉은 1228m의 높이를 자랑한다. 저 멀리에 지리산 천왕봉(1,915m)이 보이고, 능선을 따라 중봉(1,875m), 하봉(1,755m), 반야봉(1,751m)까지 조망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거기서 한동안 머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장마철 자욱한 안개는 우리의 눈을 가로 막았다. 되돌아서려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큰 아쉬움 때문이다.

내게는 이 아쉬움이 두 번째가 된다. 지난해 5월 종친회(鐘親會) 장로님들 틈에 끼어 대봉산 휴양벨리 숲속의 집 불로초둥지에서 일박까지 했다. 뒷날 나의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눈치 챈 장로님들의 만류로 대봉모노레일 하부 승강장에서, 예약을 취소하고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었다. 그 때의 아쉬움이 가시기도 전인데, 이번에는 또 안개 때문에 소경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을에 또 오세요. 오색단풍은 지금보다 더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중식 후 서목사님은 우리를 지리산 길로 안내했다. 함양-지안재(한국 아름다운 길 100선에 속한 꼬불꼬불 S자 길이다)-오도재-지리산 제일문-조망공원-마천-뱀사골-지안재-성삼재-시안재를 거쳐 되돌아 왔다. 안개는 끼었지만 지리산 변두리를 다 거친 셈이다. 서목사님의 운전 실력은 대단했다. 마음편한 여행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목사님은 운산교회에 부임한지가 29년째라 한다. 운산교회에서 은퇴한다면 40년 가까이 한 교회를 섬기게 된 셈이다. 존경스런 마음 때문에 가슴이 울컥했다. 시온성교회는 개척한지 4년에 불과하다. 예배당은 물론 교육관과 식당까지 깨끗하게 건축을 마친 상태였다. 우리는 기적의 현장을 돌아 본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 끼니마다 접대에 땀 흘린 권사님들께도 감사한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들의 섬김보다, 더 많은 축복으로 보상 받게 하소서. 아멘”(202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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